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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냄새]

​신유리

<정글짐>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돌아온 후 손에서 나던 냄새.

 

「동심」

                             나태주

 

꽃은 나무나 풀에만

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니라고 그랬다

사람도 꽃그림이 들어 있는

옷을 입으면 사람에게도

꽃이 피는 것이고

예쁜 여자아이

두 볼이 빨개지면

그것도 꽃이 된다고

그랬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움직인다고 일러줬다

그렇다면 바람과 물도

살아 있나요?

살아 있는 것은 숨을 쉬거나

무엇인가를 먹고 자란다고

일러줬다

그렇다면 구름과 불도

살아 있나요?

아니라고 대답해 줬지만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은

아이들 말대로

바람과 물과 구름과 불이 아닐까

아이들 모르게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나태주.『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알에이치코리아, 2017

 

 

 

<피순대>

피순대를 좋아하지 않아서... 냄새를 맡을 엄두가 안났습니다...

언젠간 먹을 수 있게 되길...

 

「냄새를 맡게 해 주십시오」

                             설재훈

 

냄새를 맡게 해 주십시오

아주 이상스러운 친근함

당신의 몸 내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안개 섞인 공기가

창문을 열고 들어 옵니다

한때는 그와 어울려

낯선 운명의 창들을 넘곤 했지요

 

치명적인 사랑으로

전염되길 바랍니다

 

약속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나

이상한 일입니다.

행복이 예상됩니다.

 

설재훈. 『보이지 않는 것을 추억함』, 마음세상, 2014

 

 

 

<금불초와 맥문동>

-비오고 난 뒤의 기분좋은 땅 냄새, 풀 냄새.

 

「향기」

                             태재

 

같이 걷는 길 아주 짧아도

 

너의 향기를 맡을 수 있지

 

너의 하루를 맡진 못해도

 

너의 향기는 맡을 수 있지

 

태재. 『우리는 꼭 한번 사랑을 합니다』. 빌리버튼, 2018

 

 

 

<향>

1년에 두 번 명절 제사를 지낼 때 맡는 냄새.

그래서 그런지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나는 냄새.

 

「떠나간 사람들의 도시」

                             향돌

 

너와 있을 땐 보이지 않던 풍경. 나는 가끔 그게 두려웠어.

괜스레 상쾌한 풀 냄새부터 떨어진 꽃잎 밟고 가는 자동차 멀리 흐르는 구름께로 달리는 굴뚝연기.

나는 걸음의 움직이는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너와 있을 땐 그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

놀랍게도 그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네 뒤로 흐려지는 것.

네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낯설게 다가오는 도시들의 풍경들.

내가 두려워하던 것들.

분명 있었던 너와의 걸음이 이곳 어디에도 없다는 것, 남은 것들은 생소하기만 한 것들, 너와 있느라 다 놓쳐 버린 것들.

내가 두려워하던 것들.

이렇게 네가 떠오를 만한 장면은 없는데, 마치 이 그림 위에 너라는 수채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 쉴 때마다 피어나고 있어.

어딘지 모를 꽃향기 막연한 매연 냄새 떠오르는 네 생각.

뚜렷함 없이 흐트러진 구름을 지나 풀숲의 풀잎 곁을 지나는 바람처럼 어슴푸레 떠오르는 네 생각.

너는 없는데 네가 어질러진 이 도시, 누군가 혼란으로 덧칠해 놓은 그림 속에 나 홀로 갈 곳을 잃은 것만 같아.

나 홀로 있는 것만 같아.

 

향돌. 『눈물이 녹는 시간』, 이다북스, 2017

신유리, 은행나무, 시'동심' 외 3편 참조,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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